
막대한 규모의 자금 조달이 필수적인 건설 프로젝트, 대형사들은 PF로 현장 자금을 조달하고, 공모 회사채를 발행해 본사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비교적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사들은 고금리의 사모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죠. 그런데 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만기가 도래하면 어떻게 될까요? 2026년 약 3조원의 회사채 만기를 앞둔 건설사들이 각각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목차
회사채는 회사가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을 의미합니다. 은행 한 곳에서 빌리는 은행 대출과 달리, 회사채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서 쪼개어 빌린다는 특징이 있죠. 쉽게 말해 만기일까지 약정 이율에 따른 이자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만기 시 원금을 상환할 것을 약속하는 채무증권입니다. 만기 기간은 회사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데, 통상적으로 기업어음은 1년 이하 단기로, 국내 공모채는 2~3년의 중기로 정하고 그 이상의 장기로도 설정이 가능합니다. 금리는 시장 수요에 따라 결정합니다.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신용등급이 필요한데요, 건설사는 NICE, KIS 등 신용평가사에 평가를 의뢰하고, 이후 연 1회 정기적으로 재심사를 받습니다. 대형 사건(PF 부실화, 유동성 위기 등) 발생 시에는 연중에도 등급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 건설사들은 주로 ‘공모 회사채’를 발행합니다.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고, 2개 이상의 신용평가사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하며 기관투자자들에게 ‘얼마에 살 건지’ 물어보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발행 이후에도 분기마다 재무 상태를 공개해야 하죠. (자본시장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건설사들은 ‘사모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경향이 뚜렷한데요. 사모채는 비교적 규제가 약합니다. 일반 투자자에게 공개 판매가 불가한 대신, 기관∙전문 투자자들에게만 발행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이 투자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해준 것이죠. 때문에 금리가 높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기업어음은 회사채와 비슷하지만 만기가 1년 이하인 초단기 차용증입니다. 급하게 단기 자금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데요, 만기가 짧아 계속해서 돌려막기(차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회사채 발행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납니다. 신용등급이 BBB 이하인 채권은 발행하더라도 수요가 없어 사실상 팔 수 없고, 중소형 건설사들은 대안으로 사모채나 기업어음을 찾습니다. 그러나 사모채나 기업어음은 금리가 높고 규모가 작죠.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더 비싼 이자를 내고 더 적은 돈을 빌리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실제 회사채 중 신용등급 AA등급 이상 우량물이 3조150억 원으로 79.9%의 비중을 차지했고, A등급이 16.4%, BBB등급 이하는 3.7%의 비중을 보였다고 해요.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사 회사채 규모는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중 상위 10개 건설사의 장기 회사채 규모는 총 2조3,000억에 달하는데요. 이 중 현대건설 5,000억원, SK에코플랜트 4,910억원, 롯데건설 4,311억원, 삼성물산 3,300억원, HL D&I 한라 2,150억원, 포스코이앤씨 1,057억원 등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공사례
일반적으로 건설업계에서는 회사채 만기 시 새 채권을 발행해서 기존 채권을 상환하는 방식인 차환을 추진합니다. 건설 프로젝트는 돈을 쓰는 기간과 돈이 들어오는 기간이 수년, 수십년씩 차이 나기 때문입니다. 올해 가장 큰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앞둔 현대건설은 AA-의 신용등급을 보유하여 우수한 공모채 주문건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올해 초 녹색채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모집액 1,700억원의 5배가 넘는 9,100억원의 주문을 확보하였고, 이에 따라 최종 발행 규모를 최대 수준인 3,400억원까지 늘렸습니다.
cf. 녹색채권: 친환경 사업에만 써야 하는 채권. 태양광∙풍력 발전소 건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탄소 감축 설비 등. ESG 트렌드로 일반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도 수요가 많음.
SK에코플랜트(A-)도 올해 초 1,5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1조 210억 원의 주문을 접수하였습니다. 반도체 중심으로의 사업 전환, SK그룹에 대한 신뢰도가 투자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실패-극복 사례
반면 비슷한 신용등급의 롯데건설(A)은 지난해 1,1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습니다. 단 한 명의 투자자도 회사채를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유사한 신용등급 내에서도 수요예측 결과가 상반되는 사례를 통해 투자자들이 신용등급 외에 PF 우발채무 규모, 유동성 수준, 만기구조 관리 역량 등을 독립적인 심사 기준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롯데건설은 기업어음 등 단기 조달 수단으로 전략을 선회했으나, 잦은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한계로 작용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ABS(자산유동화증권) 3,000억 원을 발행했는데요, ABS는 준공이 임박한 사업장의 공사대금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삼아 회사채에 비해 안전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죠. 1,500억 원에 대해서는 자체 현금을 예치하고 나머지 1,500억 원에는 하나은행의 신용공여를 결합하는 이중 신용보강 구조를 통해 최고등급인 AAA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대형∙중견사들이 이러한 차환 전략을 취하는 와중, 공모채 접근이 어려운 신용등급 BBB 이하의 중하위 건설사들은 만기 도래한 금액을 현금으로 전액 상환하거나 고금리 사모채를 발행하고, P-CBO 시장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PF 대출채권 기반 유동화증권 금리가 일반 건설채보다 낮아지면서, 건설사들의 자금조달 축이 PF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공모채는 수요예측∙기관 마케팅 등 절차가 다소 번거롭고 시장 수요에 따라 금리를 책정하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가지지만, PF 유동화는 회사 전체 신용이 아니라 특정 사업장의 현금 흐름과 외부 보증을 묶어 거래하는 구조이죠. 때문에 회사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해당 사업장의 안정성만으로 낮은 금리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건설사는 PF 대출을 받을 때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시행사 대신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보증을 서는데, 고금리∙경기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생기면 우발채무가 현실화됩니다. 보증 이행을 위해 수백, 수천억 원의 현금을 지불하면 재무제표가 악화되고, 신용평가사 심사에 악영향을 미쳐 신용등급이 하락하게 되죠.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는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고금리를 내세울 수밖에 없고, 차환 부담은 더욱 커집니다. 이는 다시 재무 악화, 신용등급 하락, 회사채 금리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회사가 회사채를 갚지 못하면,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상태가 됩니다. 이후 신용등급이 하락해 다른 채권∙대출 금리도 연쇄적으로 인상됩니다. 등급이 낮아지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투자자들이 이자를 깎아주고 만기를 늘려주는 등의 워크아웃이 일어나거나 법원이 개입해 기업회생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회사를 청산하는 것보다 살리는 게 채권자에게 유리할 경우, 즉 기업 가치가 아직 남아있는 경우 법원은 기업회생 개시를 결정합니다. 기업회생이 불가하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자산을 팔아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회사는 폐업에 이르게 되죠.
현대엔지니어링의 사례를 살펴봅시다. 본래 AA-의 신용등급을 자랑하던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25년, 10년 만에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A+로 강등되었습니다. 2024년 4분기, 현대엔지니어링이 담당한 인도네시아 프로젝트 원가가 급등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었고, 1조 2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신용등급이 하락하게 되었죠. 현재는 다시 AA- 등급을 되찾은 상황이지만, 대형사 또한 이러한 악순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형사마저 해외 프로젝트 원가 급등이라는 일회성 사건 하나로 신용등급이 휘청이는 건설업계 특성 상, 중소형 건설사들은 자금 조달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소형 건설사는 주요 자금 조달 수단으로 사모채∙기업어음 및 정부 지원성 채권인 P-CBO를 활용합니다. 사모채와 기업어음은 차환 주기가 짧아 만기 도래 빈도가 높고, 회사채 신규 발행 시 적용 금리 역시 현행 시장 금리를 즉각 반영하는 구조입니다. 금리 상승 국면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서는 이자 부담이 누적될수록 재무 압박이 심화되는 문제가 발생하죠. 나아가 반복적인 차환 행위 자체가 투자자로 하여금 해당 기업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며, 이는 후속 사모채 발행 시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하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이처럼 기업 신용도에 따라 국고채 대비 추가로 부담하는 금리 격차를 ‘신용 스프레드(가산금리)’라고 합니다.
회사채 시장에서 밀려나 대안을 모색했지만 여전히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중소형사들은 현재 또 다른 위험 앞에 서 있습니다. 건설공제조합은 올해 4월부터 2026년도 정기 신용평가를 실시 중이며, 기존 등급은 6월 30일 만료됩니다. 조합은 건설경기 침체를 반영해 이번 평가에서 수익성 개선 및 채무상환능력 검증 등 변별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결과에 따라 보증한도 축소, 수수료 상승이 불가피한 중소형사가 상당수 발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6년 회사채 만기 물량은 대형사들의 발 빠른 차환 전략과 PF 유동화시장 확대로 단기적으로는 큰 충격 없이 소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중소형사들에게 이번 사이클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건설공제조합 신용평가 결과에 따라 보증한도가 축소되면 수주 자체가 가로막힐 수 있고, 고금리 사모채와 잦은 차환이 맞물리면 유동성 위기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건설업계 종사자라면 거래 건설사의 신용등급 변화와 차환 구조를 단순한 재무 지표를 넘어 사업 지속 가능성의 신호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은 산군 콘텐츠 팀에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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