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건설산업은 ‘저성장, 고원가, 탄소배출규제’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내 건설사 폐업 신고 건수는 1,673건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일부 건설사는 영업이익이 129% 증가했습니다. ‘탈건설’ 흐름에 수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건설사가 생존을 위해 건설 사업에서 벗어나는 ‘탈건설’ 현상, 그 배경과 현황을 함께 살펴봅시다.
목차
글로벌 선진 건설사들은 고부가가치 투자 개발과 친환경∙신에너지 전환으로 사업 체질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처럼 건설사가 주택∙토목 등 전통 건설 사업 비중을 줄이고, 새로운 분야로 수익원을 넓히는 전략을 통칭해서 ‘탈건설’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다른 분야를 짓는 것에서 더 나아가 투자, 운영까지 직접 참여하는 구조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건설사들은 원전∙에너지 인프라 산업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이는 최근 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거대한 원전 시장이 새롭게 열렸기 때문입니다. AI 학습은 수개월간 중단되지 않고 가동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100MW가 넘는 전력이 필요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현재 사용량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기술력으로 경쟁하던 시대를 지나,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전력 인프라로 경쟁하는 시대가 찾아온 것입니다.

미국은 ‘원자력 르네상스’의 부활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러우 전쟁으로 인한 전력 생산 가격 폭등을 겪으며 자생적인 전력 공급망 설립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다시금 원전 사업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Skanska는 탈건설의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5년 하이테크 부문을 통합한 ‘SAT(Skanska Advanced Technology)’를 출범시켰고, 단순 시공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액침냉각 인프라, 반도체 클린룸, 모듈러 공법을 3대 축으로 삼았습니다. 미국의 Bechtel 역시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기차, 합성소재에 집중하며 건설의 디지털화, 에너지 전환, 리쇼어링을 탈건설의 3대 동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두 전통 건설 마진으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추진된 사업입니다.
이러한 글로벌 기류를 타고 최근 국내 대형사들 또한 하나 둘 탈건설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죠.


SK에코플랜트는 탈건설을 이룬 대표적인 건설사로, 2021년 사명을 ‘SK건설’에서 ‘에코(Eco)’를 ‘심는다(Plant)’는 의미의 ‘에코플랜트’로 바꾼 바 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ESG 경영 기조가 강화되고, 건설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환경 기업으로의 변모를 꾀한 것인데요. 그러나 2025년 환경 자회사 3곳을 매각하고, 반도체∙첨단 산업 중심으로 사업 축을 재편했습니다. 2024년 58%에 달하던 전통 건설(Solution) 부문 비중이 2025년 33%, 2026년 1분기 18%로 빠르게 축소되고 있습니다. 반면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을 담당하는 Hi-Tech 부문은 2024년 33%에서 2025년 42%로 확대되었고, 반도체 장비 재활용 및 유통을 담당하는 Asset Lifecycle 부문은 2026년 1분기 급부상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익성도 흑자로 전환되며 폭발적으로 개선되었죠. 장동현 SK에코플랜트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EPC를 넘어 반도체 소재 공급∙자원 재활용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해 ‘AI 인프라 솔루션 제공자’로 도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외 원전 10기 시공 경험을 가진 삼성물산은 대형원전에 더해 소형모듈원전(SMR)까지 수주전략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SMR은 차세대 원전으로 각광받으며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설치가 쉽고 안전성이 높다는 장점을 보이죠. 삼성은 2022년, 미국 SMR 1호 인증 기업 NuScale에 7,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2025년 10월에는 GE Vernova Hitachi와 유럽·동남아·중동 시장을 노린 SMR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요. SMR 기술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해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실제 뉴스케일 파워가 지난해 3분기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삼성물산은 대형원전으로 이익을 내며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건설은 미국 에너지 기업 ‘홀텍 인터내셔널’과 협력하여 2030년대까지 10GW 규모 SMR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미국 원전 르네상스의 실물 정의’가 처음으로 가시화되는 부지에 한국 기업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대형 건설사들은 전통적인 주택∙토목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신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탈건설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일부 중견 건설사는 대형사의 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에서 파생되는 반도체 시설 및 AI 인프라 시공 물량을 수주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코오롱글로벌의 2026년 1분기 영업이익은 22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9.2%가 증가했는데요, 이 중 건설부문이 210억원으로 드러났습니다. 삼성전자의 평택 사무6동, 삼성 평택 고덕 공공폐수처리시설 등을 맡으며 안정적인 실적을 쌓고 있는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분양 경기와 주택 공급 사이클이 건설사 실적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첨단 산업 투자 규모가 건설사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중소건설사에게는 별세계 이야기입니다. IBK기업은행의 중소기업 연체율은 2025년 말 1.71%까지 올랐는데, 이는 통계가 남아있는 2011년 이후 연말 기준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해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투자는 2025년 4분기 3.9% 감소했고, 연간 약 10%가 감소했습니다. 즉 발주 물량 자체가 10% 줄었다는 것인데요. 이는 매출 감소로 이어져 중소건설사들을 심각한 자금난에 빠뜨리는 문제를 가져옵니다. 여기에 지방 악성 미분양 문제가 합쳐지며 타격이 큰 상황입니다. 실제 2026년 1월부터 5월 27일까지의 건설사 폐업 신고 건수는 1,673건으로 지난해 동기간에 비해 17% 높았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 흐름에서 소외된 중견∙중소 건설사는 사업 다각화보다 당장의 생존이 더 시급한 상황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원전, 그 중에서도 SMR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력망이 노후화된 미국은 전력 공급의 대안으로 데이터센터 인근에 SMR을 설립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요.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부지 선정이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인허가와 상용화 일정이 불확실하다는 맹점이 부각되면서 급상승했던 주가는 다시 하락했습니다. 원전이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한국은 2035년까지 총 4개의 시험용 SMR을 짓겠다고 밝혔지만,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한 한국은 실증을 위한 안전거리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사고라도 나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소규모라는 장점이 되려 까다로운 부품∙설비 검사 및 관리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SMR 현실화 단계에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걸림돌로 등장했는데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앞다투어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각 모델의 표준화가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설계 모델만 130여 개에 이른다고 해요. 또한 ‘친환경’을 내세우던 SMR이 사실 대형 원전보다 더 많은 핵폐기물을 배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SMR 기술이 과도한 기대(Hype)를 받았지만, 실적 부진과 기술적 난제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며 “2030년대 중반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SMR이 넘어야 할 산은 기술 입증뿐만 아니라 경제성과 시장의 신뢰 회복”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불확실성은 외부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SK에코플랜트는 현재 성공적인 탈건설의 기조를 보이고 있지만, 한차례 리밸런싱(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실패하며 명예퇴직과 인원 감축을 진행했던 뼈아픈 시기가 존재했습니다. 2021년 친환경 사업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며 사명을 SK에코플랜트로 변경했고, 2조원이 넘는 자금을 환경 사업 인수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 262억의 손실을 맛보았고, 2025년 상반기 또 다시 307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환경사업을 포기하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명예퇴직과 인원감축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건설업 침체는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칩니다. 실제 지난해 건설 부문의 경제 성장 기여도는 -1.4%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원전 수출 체계 정비와 SMR 개발 지원 등 에너지 인프라 고도화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건설산업의 구조 전환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재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이원화된 원전 수출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한전과 한수원은 모회사와 자회사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원전 주도권 경쟁을 벌여 왔는데요. 해외 발주처 입장에서도 혼선이 생기고, 국가적 역량이 분산된다는 지적이 계속되어왔죠. 이에 산업부는 ‘원전 수출 총괄기관’의 법적 근거를 담은 ‘원전수출진흥법’ 제정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분간은 원전 수출에 있어 정부가 상대국과 협상을 주도하고, 양사는 공동주계약자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기존에 양사가 나누어 담당하던 수출 국가들을 통합 관리하게 되면서 한전의 강점인 대외협상·지분투자와 한수원의 강점인 건설·운영을 결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기존 계약 사항 및 발주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체코∙필리핀 대형원전 및 i-SMR은 기존대로 한수원이 단독으로 수행합니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SMR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SMR 특별법)’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요. SMR R&D부터 수출까지 전주기를 지원하는 법으로, 건설사 입장에서는 EPC 수주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부는 앞으로 5년마다 ‘SMR 시스템 개발 기본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025년 발표된 원전산업성장펀드 운용방안은 국내 원전생태계를 강화하고 SMR 산업 육성을 위해 원전산업에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신규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원전산업을 영위하는 중소∙중견기업이 주된 투자목적인 펀드로, 원전 기자재·부품·서비스 생산을 지원하여 건설사가 주도하는 EPC 생태계를 뒷받침할 공급망 전반을 육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건설사들이 생산성이 저하된 기존의 주택, 토목 공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흐름에 합류하며 ‘탈건설’을 지향하는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탈건설’은 자본과 기술을 보유한 대형사에게는 도약을 위한 선택지이지만, 당장의 생존이 급한 중소 건설사에게는 도태를 피할 수 없는 선고이기도 합니다. ‘탈건설’을 향한 담론이 확산되는 속도보다, 현장의 구조적 양극화가 더 빠르게 깊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은 산군 콘텐츠 팀에서 제작했습니다.
* 모든 산군 콘텐츠는 관련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무단전재, 재배포할 경우 법적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콘텐츠가 도움이 되셨나요?
산군 콘텐츠 저작권 안내
모든 산군 콘텐츠는 관련 법에 의해 보호 받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무단 전재, 재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