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원자재값,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등하며 조합과 시공사 간의 공사비 갈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합은 공사비를 낮추려는 의도로 시공사 교체를 시도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법원이 최근 잇달아 시공사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업계에서는 ‘시공사 교체로 얻는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실제 반포3주구의 경우 조합이 현대산업개발에 164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기도 했죠. 왜 법원은 시공사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시공사 교체는 조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봅시다.
목차

서초구 반포주공 3주구 재건축조합이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일이 있었죠. 조합은 2018년 HDC현산을 시공사로 선정했으나, 2019년 1월 시공권을 박탈하기 위한 총회가 열렸고, 이 과정에서 투표명부 위조 문제까지 발생했어요. 같은 해 12월,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취소했고 2020년 삼성물산을 새 시공사로 선정했죠. 이후 조합은 삼성물산과 약 3년에 걸쳐 공사비를 재협상했으나 총공사비는 애초보다 3,661억이 늘어난 1조1,748억원으로 확정되었는데요. 공사비를 절감하고자 했던 조합의 목표는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1심에서는 HDC현산이 청구한 이행이익 411억원 중 40%에 해당하는 약 164억원을 조합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으나, 2심에서 130억으로 액수가 조정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비슷한 구조의 판결이 계속되는 모습인데요.
제주 이도주공 2, 3단지 사업에서는 HDC현산, 한화건설 컨소시엄이 2017년 시공사로 선정되고 이듬해 가계약까지 맺었지만 조합이 마감재 수준 상향과 물가변동 조정 거부, 지질 기준 변경 등을 계속해서 요구하다가 2020년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청구된 100억원 중 60%인 약 60억원을 인정하며 조합의 요구가 “계약의 세부 조정을 넘어 주요 내용의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방배5구역의 경우 더욱 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4년 GS건설∙포스코이앤씨∙롯데건설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선정되었으나, 사업계획과 대출 조건을 두고 갈등을 빚다 2017년 조합이 계약을 해지하고 현대건설로 시공사를 교체했죠. 1심에서 41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2심에서는 초과수익 배분 논리가 배제되며 5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 2심 판단에 구체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는 취지로 해당 판결을 파기환송 하였는데요. 결국 서울고법의 화해권고로 조합은 컨소시엄에 총 525억원을 배상해야 했습니다.
신당8구역의 경우 조합이 요구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DL이앤씨가 거절하면서 2021년 계약이 해지되었고, 시공사를 포스코이앤씨로 교체하며 하이엔드 브랜드인 ‘오티에르’를 따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1심에서 조합은 약 8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조합 소유 토지 일부가 경매에 넘어갔어요. 양측이 합의하여 소송은 마무리되었지만, 입주 시점은 기존 2024년에서 2029년으로 5년가량 미뤄진 상태입니다.
앞선 반포주공3주구의 판결에서 법원이 조합 측에 책임을 물은 근거는, 입찰 방식이 내역입찰로 진행됐으며 조합으로부터 제공받은 설계도를 토대로 입찰금액을 산출했다는 점이었는데요.
내역입찰은 조합이 제공한 설계도서를 바탕으로 공사에 들어가는 항목을 하나하나 물량을 산출하고 단가를 매겨 전체 내역서를 만드는 방식으로, 상당한 품이 드는 작업입니다. 조합과 시공사의 관계가 “누구를 뽑을 지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 설계도서를 넘겨주고 시공사가 수개월에 걸쳐 물량 산출과 단가 책정이라는 구체적 작업을 마친 상태였던 것이죠. 법원은 이를 조합 측의 ‘계약상 예약채무불이행’으로 판단하여 시공사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우리 법원은 시공사 선정 이후 조합이 계약 조건을 바꾸려 하거나 일방적으로 해지를 통보했을 때, 그 책임을 상당 부분 조합에 묻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바로 “예약”법리 때문입니다. 법원은 시공사 선정 총회를 열고, 대의원회 결의를 거쳐 체결된 가계약을 ‘본계약 체결을 향한 예약’으로 판단합니다. 때문에 시공사 선정 당시 합의된 조건과 다른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이 예약에 대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며, 그 결과 시공사가 실제 공사를 완성했다면 얻었을 이행이익까지 배상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죠. 한 번 선정된 시공사는 계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신뢰할 수 있는 지위를 갖고, 조합의 자의적인 조건 변경이나 해지는 그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합이 시공사를 바꾸는 경우 무조건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총회 의결을 거쳐 시공사 선정을 취소하고 새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 자체는 조합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이죠. 또한 민법 673조에 따르면 조합은 공사가 완성되기 전이라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시공사가 청구하는 이행이익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계약을 이행했다면 실제로 이익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근거가 있더라도 이행이익 손해배상이 항상 전액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금액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거나 시공사 측이 오히려 과도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다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애초에 시공사에게 실현 가능한 이익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행이익 청구 자체를 기각하기도 해요. 결국 법원은 조합이 총회 절차를 지켜 시공사를 교체했는가보다, 선정 이후 형성된 관계에서 누가 먼저 합의된 조건을 벗어난 요구를 했는가를 판단합니다.
사실 조합은 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합의체이기 때문에 시공사가 제시하는 공사비 인상 요구가 실제 원가 상승분에 맞는 수준인지를 실시간으로 검증할 전문성이나 협상력을 갖추기 쉽지 않은데요.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공사를 바꾸려 했다가, 법원이 시공사의 요구를 합리적 범위로 판단하면 오히려 조합의 해지가 정당한 사유 없는 해지로 평가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법리가 없다면 조합이 입찰 단계에서만 여러 시공사의 견적을 받아본 후, 조건 없이 시공사를 교체해버리는 불상사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존재하죠. 결국 이 문제는 조합과 시공사 중 어느 한쪽의 구조적 우위를 확인하는 문제라기보다, 선정 이후 형성된 신뢰관계를 어느 시점부터, 어떤 근거로 보호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에 가깝습니다.
최근 시공사 변경 관련 판례들은 시공사 선정 이후의 계약관계를 법원이 얼마나 무겁게 보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가계약이더라도 선정 이후 그 조건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약 준비가 이뤄졌다면, 그 지위는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잠정적인 것이 아닌 법적으로 보호받는 신뢰관계로 취급됩니다. 신뢰관계를 어느 쪽이 먼저 흔들었는지, 실현 가능한 이익이 존재했는지가 핵심이죠.
그런데 공사비 때문에 시공사를 교체했는데, 더 높은 공사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게다가 이전 시공사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날 경우 이중부담이 발생하죠. 앞서 살펴본 반포3주구의 사례가 바로 그러합니다. 높은 공사비로 인해 시공사를 교체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사비는 3,661억원 더 늘었고 손해배상 판결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방화6구역의 경우 2024년 HDC현산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2025년 삼성물산으로 변경하였는데요. 공사는 이미 분양 단계까지 갔지만, HDC현산과의 손해배상 다툼은 여러 건의 소송으로 이어지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상계주공5단지는 2023년 GS건설과 계약을 해지하고 한화건설을 새로운 시공사로 맞이했는데요. GS건설에 25억 원가량의 손해배상금을 물어내야 했으며, 공사비는 기존 평당 650만원에서 약 720만원으로 오히려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 갈등이 늘어나는 지금, 정비사업 곳곳에서 시공사 교체 시도와 그에 따른 소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결국 공사비를 아끼려던 선택이 공사비도, 위약금도 더 무는 결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들이 앞으로 어떤 판결로 이어질지, 앞으로 조합과 시공사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지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은 산군 콘텐츠 팀에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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