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도로, 철도, 학교, 군 시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공시설 상당수가 민간자본으로 지어졌습니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사회기반시설(SOC)을 민간이 투자∙건설하고, 운영 수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시장이 얼어붙고 있죠. MRG 폐지로 수요 리스크가 민간에 전가되고, 고물가∙고금리로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치솟으면서 민간의 사업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인데요. 민간투자사업의 계약 구조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습니다. 본 콘텐츠에서는 MRG 폐지의 배경과 건설사에 전가된 리스크, 물가연동 조항의 구조적 허점을 짚어보겠습니다.
목차
민간투자사업은 1994년 도입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근거로 합니다. 앞서 민간이 대규모 SOC를 투자하고 건설하여 운영 수익을 가져간다고 설명했는데요.
고속도로를 예시로 들어볼까요? 일반적으로 고속도로는 사회기반시설이므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고 건설에 착수해 준공 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민간투자사업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 민간 기업이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해 돈을 투자해 건설하고, 일정 기간 운영하며 통행료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게 됩니다. 운영기간이 끝나면 정부에 소유권을 넘기게 되죠.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막대한 예산 없이도 빠른 착공이 가능하고, 민간의 기술력과 효율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업은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죠. 서울 신사역과 경기 광교역을 잇는 신분당선이 대표적인 민간투자사업 사례입니다.

민간투자사업의 주요 방식으로는 BTO, BTL 등이 있는데요. BTO는 Build-Transfer-Operate의 약자로, 민간이 건설(Build)하고 완공 즉시 정부 소유로 이전(Transfer)한 후 일정 기간 운영권을 받아 운영(Operate)하는 가장 흔한 방식입니다. 민간기업이 이용자에게 직접 돈을 받는 방식으로, 주로 고속도로, 철도에 적용됩니다. BTL은 Build-Transfer-Lease의 약자로 민간이 건설하고 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한 후 정부가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학교나 군 시설에 자주 사용됩니다. 민간에게 수요 리스크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로 작용하죠. 다만 수요 리스크가 없는 대신 수익도 제한적입니다.
과거 민간의 수요 리스크 부담을 줄이기 위해 MRG(최소운영수입보장) 제도가 운영되어 왔는데요, 기업이 사업을 시작할 때 협약된 수입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보장해주는 제도였습니다. 수익이 예상보다 적어 손해를 보게 되면, 정부가 그만큼의 비용을 기업에게 보전해 주는 것이죠. 그러나 일부러 기대 비용을 부풀려 낙관적인 수치를 제시한 후 정부로부터 수백 억원을 보전 받는 일이 몇 차례 발생하며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일었고, 결국 2009년 폐지되었습니다.
MRG 폐지 이후 신규 민자사업에는 운영적자가 난 경우에만 보전하는 MCC(최소비용보전)가 적용되었는데요, 기존 MRG 사업 일부도 MCC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전보다 정부 부담은 줄었으나, 여전히 세금으로 민간 손실을 메우는 구조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제 과도한 사업 수요 예측 논란에 휩싸였던 민간투자사업 사례를 살펴볼까요?
용인경전철
MRG 방식으로 추진된 용인경전철은 당초 13만9000명으로 예상했던 일일 이용객이 실제 9000명에 그치면서, 현재까지 매년 400억이 넘는 적자를 부담하고 있는데요. 이에 용인 시민들은 2013년 주민소송단을 자발적으로 구성해 약 1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약 12년간 이어진 주민소송은 지난해 12월 전 용인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의 배상책임이 최종 확정되며 막을 내렸습니다. 과도한 수요 예측에 시민이 직접 법적으로 맞서 승소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죠.
부산김해경전철
부산김해경전철은 2011년 개통 뒤 올해까지 5천억 원의 누적 적자를 보였고, 2017년 사업 구조를 MRG에서 MCC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2041년까지 추가로 1조 1,705억의 재정 지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요. 이는 김해시 예산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죠. 6월 지방선거로 당선된 정영두 김해시장은 부산과의 연합으로 국비를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폐지 후 1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부는 1999년~2009년 사이 MRG 조건으로 체결된 사업들에 보전금을 지급하고 있죠. 2010년에서 2021년 사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민자사업 수익 보전에 지출한 금액은 총 6조 7,496억에 달합니다.
MRG가 폐지되면서 민간은 수요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금보충약정(CDS)이라는 새로운 부담도 가중되었는데요, 수요 부족으로 SPC 운영비가 부족할 경우 출자 건설사가 지분율에 따라 자금을 채워 넣기로 한 약속입니다. 문제는 이 자금의 상환 순위가 모든 채권 중 최후 순위이기 때문에,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사업이 어려울 때 돈을 넣어야 하는데, 돌려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공사비 및 금융비용 상승까지 더해지며 민자사업 참여는 눈에 띄게 줄었는데요. 2004년~2008년 324개였던 민자사업은 2019년~2023년 113개로 감소했죠. 정부는 민자시장 활성화를 위해 비교적 수요 리스크가 적은 BTL 한도를 늘려 민간 참여를 유인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2026년 BTL 총한도액을 3조9,995억원으로 확정하며 2025년(1조6,431억원) 대비 크게 증액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기존 학교, 군 시설 위주이던 시장을 우주항공청 시설, 우체국, 의료원 등으로 확대한 결과로 민자사업 전체가 위축된 가운데 BTL 한도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인데요. 다만 BTL 시장의 확대는 민자사업의 외형을 키움과 동시에 정부의 재정 부담도 함께 가중시키는 한계를 지닙니다.
수익 리스크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물가 연동 조항이 필요합니다. 민간투자사업은 사업 제안 당시의 금리, 자금조달비용, 수요예측을 기반으로 수익 모델을 설계하게 되는데요. 착공에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이 소요되면서 금리가 급등하고, 비용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때문에 수십년 뒤 회수할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계속해서 하락하는 것이죠. 물가연동 조항 문제가 건설업 전반의 이슈임에도 민자사업에서 특히 부각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장기 계약 기간에 있습니다.
BTO는 이용자 요금으로 수익을 회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요금 인상에 제동이 걸립니다. 과도한 인상은 사회적 저항이 크고, 정부 승인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미 한국도로공사 대비 높은 민자 고속도로 요금을 추가로 올리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 개선을 위해 정부는 2024년 “2021~2022년 건설물가 급등분의 50%를 총사업비에 반영하는 특례”를 신설하였는데요. 2020년 이전에 협약을 맺은 BTO 사업들이 코로나 이후 공급망 충격 등으로 인한 건설 물가 급등분이 반영되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해야 했던 것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3~4년이나 흐른 뒤, 절반밖에 보전 받지 못해 건설사들은 손해를 보아야 했죠. 이처럼 물가연동 조항이 불완전한 경우 실질 수익은 감소하게 됩니다.
현재 BTL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운영비를 지급하고 있는데요. 임대료 자체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BTL로 지은 학교에 정부가 매년 100억씩 임대료를 주기로 약속했다고 생각해봅시다. 협약 시점에서는 실질 가치가 100억이지만, 10년 후 물가가 30% 상승했다면 실질가치는 약 77억이 되고, 20년 후 물가가 60% 상승했다면 실질가치는 약63억으로 하락하게 되죠. 명목상 받는 돈은 같지만 실질 가치는 하락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길어지게 되면 재무적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게 되는데요. 앞선 BTO 물가연동 조항의 미비 문제와 합쳐지면서 민간 사업 전체의 파이가 작아지는 결과를 야기하게 됩니다.
정부는 2023년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을 개정하며 보정 공사비가 7% 이상 차이 나는 경우 초과분의 50%를 총사업비에 반영토록 하는 ‘7%룰’을 신설했지만, 실제 적용을 받은 사업이 없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죠. 뒤이어 2024년 앞서 언급한 물가 특례가 도입되었지만 적용 범위가 ‘실시협약 미체결 사업’으로 한정되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업이라도 협약 체결 시점에 따라 보전 여부가 갈리면서, 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는데요. 이에 업계는 총사업비 사전확정주의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민자 제도에 물가 변동을 유연히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입니다. 물가연동 조항과 정부 재정 부담의 균형 설계가 민자사업 구조 개선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민간사업 축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24년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에서 공사비 상승 특례와 30조원 투자 확대를 공언했고, 2026년에는 BTL 특별인프라 펀드 신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민간 참여를 유인하기 위한 재정 투입 확대에 가까운데요. 계약 구조의 리스크 배분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공사비 보전과 펀드 조성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워 보입니다.
최근 발생한 교통시설 사고에 민간투자사업이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 또한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재정사업과 민간사업이 병행되는 경우 시행이 용이한 구간을 민간투자로, 민원이 많은 도심 통과 구간을 재정사업으로 분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민간투자 구간이 먼저 완공돼도 재정 구간이 완공되지 않으면 전체 사업 준공이 지연되고, 이 경우 민간 사업자가 정부에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계약 구조가 존재해 공기 단축 압박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결국 근본적인 해법은 사후 보완이 아닌 계약 구조의 재설계입니다. 앞서 언급한 물가연동 유연화, 리스크 분담 구조 개선, 수요예측 책임 구조 강화 등 계약이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죠. 계약 구조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 민자시장의 위축은 불가피하고, 그 피해는 결국 공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민자사업 환경을 위한 계약 구조 개선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은 산군 콘텐츠 팀에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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